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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소리도 없이 : 범죄자 태인(유아인)의 편을 들게 만드는 홍의정의 역량

by ♧♥ʘ○ʘ♥♧ 2022. 3. 25.

이 영화 뭐지? 창복(이재명)과 태인(유아인)이 하는 일은 분명히 범죄다. 그런데 범죄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범죄자 태인(유아인)의 편을 들고 있다. 왜 그럴까? 

 

1. 창복(이재명)과 태인(유아인)의 성실한 범죄

창복과 태인이 하는 일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수습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하고 있는 창복과 태인의 모습이 의외다. 창복과 태인은 도덕적 판단 기준 없이 무감각하고 평범하게 일상처럼 이 일을 처리한다. 심지어 어찌나 근면 성실한지 감탄이 나올 정도다. 신앙심이 깊은 창복은 시체를 묻고 나면 성경책을 두 손에 쥔 채 기도를 올리기까지 한다. 범죄인데 성실하다? 뭔가 대단히 모순적인데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무서울 정도다. 

 

2.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태인(유아인)

영화가 시작되고부터 끝날 때까지 태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왜 하지 않는지에 대한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엄청나게 궁금하지만 영화는 그걸 알려줄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그래도 태인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착각할 정도로, 태인 역을 맡은 유아인이 여러 가지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3. 불쌍한 태인(유아인)의 꿈

계획에도 없고 악의도 없었지만 창복과 태인은 유괴범이 되었다. 하던 일만 열심히 하면 좋았을 것을 창복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좇다가 허무하게 죽고 만다. 순진한 태인은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초희(문승아)를 다른 데 팔아넘기라며 창복이 적어줬던 주소지로 초희를 데리고 가지만 결국 다시 데려온다. 돼지우리 같던 태인의 집을 치워주고, 짐승 같던 자신과 여동생(이가은)을 사람처럼 웃게 만든 초희를 통해 태인은 어쩌면 초희가 있는 지금처럼 계속 웃으며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유괴범이고 초희가 유괴당한 아이라는 걸 까맣게 잊은 채... 

 

(결말 스포)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쳐버린다. 어쩌면 초희가 다른 영화들처럼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인해 태인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기엔 초희는 가정에서부터 부모 앞에서 착한 아이인척 연기하며 사는 법을 알아버린 가여운 아이다. 그래서 태인의 집에서도 착한 아이처럼 태인을 속였다. 그렇다고 그게 배신일까? 태인이 유괴범이라고 선생님한테 말한 것이 배신일까? 이렇게 보면 배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유괴범 태인의 편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도망가는 태인을 보며 유괴를 당했던 초희를 원망하는 나를 보며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악의가 없었더라도 범죄는 범죄다. 그런데도 범죄처럼 느껴지지 않게, 범죄자 편이 되어버리게 만든 홍의정 감독의 각본과 연출이 새삼 대단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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